과거에는 모니터와 키보드만 보면 두근 거리는 순간이 있었다. 마치 하얀 캔버스를 보며 자신에 의해서 세상에 처음 모습을 나타낼 한폭의 그림을 상상하는 것 처럼 키보드를 보면 흥분되는 그런 순간이 있었다. 시간이라는 것은 참 많은 것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다. 상상해보라. 초등학교 시절, 그 단순한 소풍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소풍 전날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작년 한해 나는 3개의 해외 논문을 내고, 11개의 기술 컬럼을 작성했으며, GT와 KU를 졸업하기 위해 열심히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GRE와 같은 영어 시험들을 쳤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내가 했던 것들의 결과가 궁금해서 설레였던 적은 SESC를 통한 캐시 프로젝트 단 한번 이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위경련을 일으킬 만큼 힘겨웠으며 프로그램을 만들면서도 내가 만든 모듈의 결과가 예상과 달라 원인을 생각하기 바빴다. 일본에서는 내 목표가 손에서 벗어나버릴까바 고작 하나 먹은 초코바를 처음 보는 거리에 모두 토해냈으며, 책상에는 항상 아스피린 껍질과 활명수, 박카스 병이 굴러 다녔다. 더욱 중요한 것은 랩실을 들어서면서, 그리고 내 작업실 문을 열면서 오늘 새로 만들어질 그림을 기대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적은 한번도 없다. 그곳에는 어떠한 설레임도 없었다. 단순한 나에 대한 신념만이 존재 했다. 지금도 누가 강요한 적은 없지만 박사 과정에 들어가기전에 두개의 논문을 더 작성하고 있지만 그 과정이 그렇게 즐겁지 않다.
회상속에서 내가 단 한번도 내가 평생해야 할 일에 대한 흥분을 느끼지 못한 이유를 분석해본다면 첫 번째 이유는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한 내 기반 지식의 부족과 능력의 결여에 있을 것이다. 칙센트 미하이의 플로우(Flow, Optimal Exprience)의 진입 조건을 따져 본다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술의 부족에 있을 것이다. 두번 째 이유는 작년 한해를 거치고, 올해 여러 어드미션을 받으면서 내 원래의 목적 -- 내가 잘 할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는 분야의 교수에게로 간다 --를 벗어나 지명도와 수치적 가치를 먼저 보게 되는 소위 속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펀딩은 없지만 이후 나의 위치를 어느정도 대변해줄 위스콘신, UCLA, 브라운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원래의 목적과 일치하고 적절한 펀딩을 지원해주는 펜스테이트를 갈것인가를 고민 하고 있다.
삼성 부사장이 자살을 하고 초 전도계의 이성익 교수의 자살 소식을 들으면서 그들의 자살에 원인은 실적도 삶에 대한 고뇌도 아닐 것이라 생각 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차이. 잘하는 것을 자신의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생각한다면 삶이라는 긴 여정에서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방법이 있는가? 분명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은 그 긴여정속에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때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만큼 젊은가? 정작 키보드를 보면 이제 설레이는 마음보다는 어떻게 문제를 분석할 것인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학교의 이름을 살펴보고 지명도를 확인하고 순위를 확인 하는 지금의 내가 그들과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일말에 여지가 있는가? 문제를 풀기 위한 기반 지식에 대한 한계를 겪을때 마다 생기는 그 고통을 넘지 못하고 있다면 잘하는 것에 앞서 내가 좋아하는 일은 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잘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면 내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60이 가까운 한 교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열정이 다 식어버린 상태에서 늙은 연인을 안고 어색한 탱고를 추는 느낌이다"
"애당초 학문에 대한 흥미도 자신감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교수가 덜컥 되었는데 학생들 앞에서는 수십년째 고매한 학자인척
연기하기도 힘들다"
늙은 연인을 안고 어색한 탱고를 추고 싶은 마음은 추어도 없다. 고매한 학자인척 하는 연기하는 것은 나로서는 완전이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만들어내고 생각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면 작년 올해 내가 한것과 앞으로 할 것들은 내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창문 밖으로 버리고 있는 것과 같은 부질 없는 짓일 것이다. 언제 쯤이면 나에게 있는 깨진 창문들을 모두 고치고, 예전처럼 키보드와 모니터 앞에서 미칠도록 즐거웠던 그 설레임을 다시 가질 것인가?
32에 맞는 생일날, 그냥 복잡한 마음을 정리 할 수 없는 내 자신이.